미국발 글로벌 무역 전쟁이 불붙으면서 한국의 수출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일괄적으로 '관세 폭탄'을 매기겠다고 한 뒤 무역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의존도는 69%에 달합니다.
내수 기반이 빈약한 한국은 수출에 기대야 할 수밖에 없는 경제 구조인데 무역전쟁 후보국인 미국, 중국, EU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특히 더 높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이어 미국과 EU에 각각 686억달러(비중 12.0%), 540억달러(비중 9.4%)를 수출했습니다.
세 곳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46.2%로 절반에 육박한 셈입니다.
긴 부진 끝에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수출이 꺾이면 가까스로 회복한 3%대 성장률도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6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중국에 1천421억달러를 수출했습니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8%로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높았습니다.
미국, 중국, EU 간의 무역분쟁은 완제품 수출뿐 아니라 중간재 수출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미·중, 미·EU 간 교역 규모가 축소되면 자연스레 중간재에 대한 현지 수요도 줄어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중간재는 철강, 자동차 부품 등 완성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품이나 반제품 등을 말합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대 중국 수출 가운데 중간재 비중은 79%에 달합니다. 독일(58.8%), 프랑스(54.1%), 미국(49.4%)도 중간재 비중이 절반 또는 그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반도체 업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공급과잉 상황에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로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 카드까지 불거지면 국내 자동차산업의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미국 정부가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 폭탄' 조치를 공식화한 뒤 유럽연합, EU 회원국과 중국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은 미국을 상대로 강경 대응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철강·알루미늄의 관세 폭탄은 물론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압박,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등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통상 정책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한국은 주도권을 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의 무역전쟁의 진짜 상대는 WTO라고 얘기합니다.
미국 경제학자 중 유일하게 트럼프 정권에 합류한 교수인 나바로 국장은 자신의 책에서 “중국의 WTO 가입 이후 5만7000개의 미국 공장이 사라졌고, 2500만명의 미국인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WTO를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후보 시절 그가 내놓은 경제 계획 보고서에도 이 같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할 일은 유럽이나 중국 등과 공조하는 것입니다.
2002년 철강에 대한 세이프가드 때도 한국은 일본, 유럽 등과 공조한 덕에 승소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4일 “WTO 제소라는 국제 규범을 통해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응하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WTO에 제소해도 유럽이나 중국 등 강대국들과 공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